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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만에 아는 척 — EP.01

절규, 비명 지르는
그림 아닙니다

3분 소요 에드바르 뭉크 표현주의 2026.07
에드바르 뭉크, 절규(1893)
에드바르 뭉크, 〈절규〉(1893), 오슬로 국립미술관

전시장에서 〈절규〉 앞에 서면 다들 비슷해요. 잠깐 멈춰서 사진 찍고, "이 사람 소리 지르는 거지?" 하고 지나가요. 근데 이거… 완전히 반대예요.

저 사람, 귀를 막고 있는 거예요

손 위치를 다시 보세요. 입이 아니라 에 있어요.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막고 있는 거예요.

뭉크가 1892년 일기에 직접 남긴 말이 있어요. "비명이 자연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고, 내게 그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다리 위를 걷다가,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요.

비명을 지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에요. 그림 속 사람은 그 소리가 너무 괴로워서 귀를 틀어막은 거고요.

핏빛 하늘도 그냥 그린 게 아니에요

그림을 그리기 10년 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전 세계 하늘색을 몇 년간 바꿔놨다는 기록이 있어요. 노르웨이 하늘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게다가 뭉크가 살던 동네 근처엔 정신병원과 도살장이 있었어요. 밤마다 어디선가 진짜 비명이 들렸을 거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절규〉는 '무서운 표정 그림'이 아니라 소리에 대한 그림이에요. 다음에 이 그림 보면 표정 말고 손부터 보세요. 30초만 보고 나오지 말고요.

전시장에서 써먹기 🔖

누가 "절규다~" 하면 이렇게 받아보세요. "저거 비명 지르는 거 아니야, 귀 막고 있는 거야. 비명은 자연이 지르고 있고." — 이 한마디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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